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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져 있었다. 이번에도 작업반장이 내가 파야 할 호를 정해주었다. 아 무도 내가 파는 이곳에 묻혀 있지 않기를 바라며 또다시 땅을 파기 시 작했다. 반쯤 팠다고 생각했을 때 옆에서 같은 작업을 하던 인원이 뭔 가 발견했다며 이리로 와 보라고 했다. 사람의 허벅다리 뼈. 순간 나 의 가슴 한켠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였다. 청춘을 나라를 위 해 바쳤던 용사가 이곳에 초라하게 누워 있었다. 남모를 깊숙한 산 등 허리에서 그는 이름 없이 죽어 있었다. 호 주변을 조심스럽게 호미로 파내어 뼈 조각 몇 개를 더 찾아내었다. 주변은 탄피들로 가득했다. 그 는 아마도 마지막까지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다 피흘리며 고통 스럽게 죽어 갔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오빠이고 형이었을 것이다. 또 그는 아마도 고통스런 죽음의 순간에서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했다. 유골을 수습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 았다. 해는 주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앞으 로도 이 땅의 태양은 뜨고 지기를 반복하며 넓은 하늘을 밝게 비추리 라. 부대로 복귀하는 버스 좌석에 앉아 피곤한 눈꺼풀을 잠시 감아보 았다. 오늘은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결코 그냥 지켜 진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유해발굴 이라는 귀중한 체험을 통해 알게 됐다.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슬픔으로 지켜진 우리나라. 우리는 절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지켜낸 조상들의 노력을 우리는 가슴에 새기며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등 뒤로 멀어져가 는, 음산한 잡초가 무성한 그 산등 위에는 뜨거운 역사가 누워 있었다.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59 Vol.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