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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에서는 지난 1995년부터 매달 ‘이달의 호국인물’을 선정해 헌향하는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국난을 당해 나라가 위기에 처 했을 때 최전선으로 나아가 큰 전공을 세운 전쟁영웅과 명장을 선정해 그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삶과 공적을 재조명하는 것. 전쟁기 념관에서는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분들의 공훈을 찬양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헌향행사를 매월 첫째 주 목요 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 실에서 거행하고 있다. 이 행사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 호국인물의 고귀한 정신을 깨닫는 계기 가 되고 있다. 지난 호에 이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숭고히 산화한 해병대 출신 호국인물을 소개한다. 진두태 중위 ● 192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한 진두태 중 위는 1949년 4월 당시 병조장(원사)으 로 해병대 창설에 참여, 6·25전쟁 전 까지 제주도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해 큰 공을 세웠다. 6·25전쟁 발발 직 후에는 군산지역에 상륙한 적과 교전 중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해 1951년 3월 소위로 특진했다. 이후 아군의 북진작전에 참가해 원산상륙작전을 비롯한 고 성·함흥지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는 그의 24번째 생 일날인 1951년 3월 8일 대관령 공격작전에서 수색 소대장으 로 정찰 중 매복한 적에게 포위되었으나 부하들을 먼저 안전하 게 철수시킨 후 단독으로 적과 교전, 여러 명을 사살하고 장렬 하게 산화했다. 적과 교전시 언제나 선두에서 비호 같은 동작으로 적을 소 탕해 생전에 ‘해병 중의 해병’으로 칭송받았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도 부하부터 살리고 자신은 조국의 전선에 목숨을 바치 는 진정한 군인정신을 발휘했다. 정부는 전공(戰功)과 함께 불퇴전의 용맹과 살신성인의 정신 을 실천한 그의 고귀한 정신을 기려 중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안창관 대령 ● 안창관 대령은 평남 평원에서 독립운동가 안용운 선생의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린시절 부친을 따라 만주로 들어 가 하얼빈 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금강소학교에서 수년간 교사생활을 하였으며 조국이 광복되자 귀향한 후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다. 1948년 9월 해사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임관하여 6·25전쟁 전 진주와 제주도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여 낙동강전선이 위 태로울 때, 김성은 부대의 7중대장으로서 마산방면으로 침공해 오는 적 정찰대대를 진동리에서 기습공격으로 격멸, 국군사상 최초로 전 부대원이 일계급 특진했다. 이후 통영상륙작전에 참 가, 다른 대원과 함께 약 500여 명의 적을 사살하여 해병대의 용명을 떨침으로써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이 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에도 참가하였다. 또한 인간으 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도솔산 탈환작전에 참가 하여 한국 해병대의 용맹을 떨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 외 대우산 전투와 김일성고지 전투 등 전쟁기간 내내 전투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휴전 후 제2상륙전단 장, 진해기지 참모장, 해병대사령부 군수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병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전투유공 으로 금성을지훈장, 금성충무훈장, 미동성훈장 등을 수상했다.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시작하여 전쟁 전 공비토벌로부터 전 쟁 이후 수많은 격전지를 누비며 청춘을 전장에서 보낸 그는 1966년 해병대령으로 전역했으며 1971년 타계했다.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57 Vol.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