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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연이어 전국대회에서 입상 소식이 전해졌다. 2006년 미스터 유니 버시티 대회에서도 3등을 차지하며 한국 보디빌딩을 이끌어갈 기대 주로 꼽히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의 꿈은 다른데 있었다. “원래 체육교사가 꿈이었어요. 항상 ‘참된 스승’이라는 꿈이 있었 거든요. 대학원을 마치고 임용고시에 합격한 후 2007년부터 상명고 등학교와 중학교에서 3년간 체육교사로 일했어요.” 운동을 관두고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운동을 통해 더욱 참된 스승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제 목표는 담임을 맡고 또 아이들을 위해서 시합에 출전하는 거였 어요. 하라고 지시하는 것보다 먼저 솔선수범해서 보여주는 선생님 이 되고 싶었죠. 인내와 끈기, 절제를 제자들에게 말로 요구하는게 아 니라 직접 그 정신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계약 문제로 학교일을 관둬야 했고 그는 다시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다. 선생님을 하면서도 운동을 틈틈이 하긴 했지만 몸이 많이 죽어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 항상 순 위권 안에 들던 그였기에 자신감은 컸다. 2010년 5월에 열린 머슬매 니아 대회. 하지만 예선탈락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승승장구하던 기억에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나 정도 면 충분히 되겠지 싶었던 거죠. 그래서 다시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 어요. 독기를 품었죠. 정말 1년 내내 닭가슴살만 먹었어요. 그 때 해병대 정신이 나왔어요. 정신이 나약했구나. 예전 기억을 꺼냈어 요. 악착같이 해보자.” 그리고 그 해 9월에 머슬매니아 휘트 니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드 디어 1등을 하게 된다. 명실 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보디빌더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국가대표 자격과 함께 프로자격을 얻은 그는 세계선 수권 대회에도 출전하고 12월 미국 라스베거스 대회에도 한국인 최 초로 출전을 하여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지난 6월 15일에는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유니버스 세계대회에 출전했다. 한국 최초의 TOP6 입상. 변변한 스폰서 없이 일궈낸 기적과 같은 결과다. “보디빌딩 자체가 비인기 종목이다보니 전국체전 정도만 생각하 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예요. 아직까지 기회가 없었고요. 하지만 이제 그 기회가 열렸고 제가 이제 최초로 도전하게 되는거죠. 후배들이나 제자들이 보고 있으니까 선구자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죠. 그리고 프 로로서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몸을 보여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러다보니 지금 몸이 최고조에 이르렀어요.” 머슬매니아 대회. 미국에서는 20년이 넘은 대회로 그 인기는 상상 을 초월한다. 그 세계무대에 오를 수 있는 프로가 한국에 단 4명이 있 다. TV를 통해 스타가 된 숀리 역시 머슬매니아 대회 출신. 그래서인 지 프로자격이 있는 권영두 선수의 가치는 더욱 높아보인다. 하지만 프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 다. 비인기종목의 설움. 한국에 단 4명 밖에 없는 프로에게도 그 설움 을 찾을 수 있었다. “고생한 만큼 돌아오는 것도 있으면 좋을텐데 그런게 없어요.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