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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9 급 1위들 중에서도 전체 그랑프리를 차지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권영두 선수였다. 그리고 그에게 미국협회에서 프로카드를 발급받게 된다. 미국의 프로 대회에 나갈 수 있는 한국 최초의 선수가 된 것이다. 다들 힘들다고 하길래 얼마나 힘든지 확인하고 체험하고 싶어 해 병대를 지원했다는 881기 권영두 프로. 2000년 7월 입대한 그는 그 뜨거운 여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22살에 가서 늦게 입대해서 동기들은 어리고 고참들이 동갑이어 서 적응이 잘 안 됐어요. 훈련보다 내무생활에 고충이 많았는데, 요 즘도 새벽 아침 기운을 마시면 그 때 기억이 아직도 나요. 소각장에 서 청소하다가 담배를 숨어서 폈던 기억. 그 아침 이슬 냄새. 평생을 가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운동을 했던 그에게도 군대 시절은 여전히 힘들었던 기억으로 그 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그에게 남겨준 시 절이기도 하다. “그 때의 추억들이 지금 운동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죠. 운동 을 하다가 극한으로 갈때면 힘들었던 해병대 시절이 아직도 떠올라 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견딜 수 있는 거죠.” 해병이라면 누구나 다는 빨간명찰. 아니 해병만이 달 수 있는 빨간 명찰을 달 때의 기분 역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해병대가 됐구나. 바라만 보던 빨간명찰을 가슴에 달아 줄 때는 가슴도 뛰고 뭔가 강한 남자가 된 느낌에 뭉클했어요. 자대 배치 받을 때도 동기들과 헤어지면서 많이 울었죠. 슬프기도 하고 실 무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서인지 많이 울었어요.” 막상 실무로 가자 운동을 잘해서 고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고 한다. 구보, 턱걸이, 축구 뭐 하나 못하는게 없는 그였고, 때로는 너무 잘한다고 혼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군대 시절의 운동은 지 금의 그를 있게해준 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군대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놀드슈왈 츠제네거를 동경하게 됐고, 쫄병 때는 숨어서 팔굽혀펴기랑 턱걸이 를 하다가 병장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했어요. 부대원들이 쉴 때 도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죠. 처음엔 그냥 몸을 멋지게 만들고 싶 었어요. 남자들의 로망이 있잖아요.” 보디빌더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해병대를 지원했을 때처럼 좀 더 강하고 좀 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을 뿐. 하지만 전역한 후에 보디빌더로 활동 중이던 후배를 만 났고 그 만남이 그를 보디빌더의 세계로 이끌었다. “골격도 좋고, 밸런스도 좋고,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해 줬어요. 하지만 저는 사람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 성격인데 이런 걸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운동이라서 많은 고민을 했죠. 일주일쯤 심각 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을 바꿔준 고민이었죠.”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독하게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술은 물론 좋아하는 음식도 끊었다. 못 끊을 것 같던 담배도 끊었다. 해병대 에서 꾸준히 운동을 한 것이 바탕이 되어 몸은 순식간에 만들어져갔다. “1년 정도 준비를 해서 2005년 미스터 YMCA대회에 나갔어요. 처 녀출전 한 국내 메이저 대회였는데 3등을 할 수 있었죠. 해병대에서 운동을 한 게 기초가 되어 주었어요. 거기에 체계적으로 하다보니 몸 이 금방 만들어진거죠.”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