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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시간에 꿈 얘기를 해보라길래 혼자 손을 들고 세계 최고의 무술 감독이 된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동기들도 다 알았을 거예요. 제가 너무 설레발을 쳐놔서.(웃음)” 가장 힘들다는 극기주의 천자봉 행군. 그곳에서도 돌탑에 돌멩이 를 올리면서 무술감독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정도였다니 그의 열망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빨간명찰을 달면서 그는 진정한 해병 이 된다. “그것을 받는 순간 ‘나도 드디어 해병이 됐구나’라는 실감이 들었 죠. 찡하면서도 뭔가 갑옷을 어깨에 하나 더 얹은 느낌이었어요. 동기 들이랑 헤어질 때는 애인이랑 헤어지는 것보다 더 슬프게 울었어요. 얼굴을 적시는 남자의 눈물. 정말 동기들을 그리워 할 것 같았는데 아 니나 다를까 실무 가니까 잊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그는 수색대대로 배치됐다. 훈련소 시절 간간히 마주치던 그 멋진 수색대 선임들의 품으로 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웃통을 까고 수색대 노래 부르면서 뛰 어다니는 선임들의 모습. 뭔가 야만스러울 정도로 남자다운 모습들. 너무 여유롭고 멋있었어요. 그래서 수색대원이 되는 길을 더욱더 포기할 수 없었다. 공수교육을 받다가 다리의 인대가 늘어났지만, 퇴교를 권하는 조교에게 울면서 메 달렸다. 끝까지 해내겠다고. 그리고 52차 수색교육. 낙오하는게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그 힘든 관문이 드디어 그를 찾아왔다. “정말 상상 이상이었어요. 교육훈련단에서의 훈련은 기억도 안 날 정도죠. 그 전에 훈련받았던 것을 즐겼다면. 여긴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수색대원들에 비해 약한 수영실력 때문에 또 고생을 했다. 물 안경도 쓰지 않고 발이 안 닿는 곳에서 파도를 헤치며 수영을 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 바다에 들어가면 2~3시간은 기본으 로 수영을 해야 하는 상황. 저체온증 증상까지 느껴지는 와중에 손발 묶고 수영, 물 속에서 매듭메기 등등을 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들어갔는데 심장이 뛰고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부이를 잡고 올라가고 싶은 거 예요. 무술감독이고 뭐고 포기하고 싶은 거였요. 그 때 같은 조에 있 던 선임이 정신차리라고 가슴을 막 때리는거예요. 겨우 호흡 조절하 고 다시 정신을 차렸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다. 몇몇 동기들이 퇴교 당하는 모습 을 보면서 수색대는 관두고 그냥 평범하게 군 생활을 할까하는 유혹 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동기들과 선후임이 그를 이끌어 주 었다. 그리고 무술감독이라는 꿈. 꼭 해병대 특수수색대를 나와야 된 다는 목표가 그를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지옥주가 다가왔다. 해병대 의 모든 훈련 과정 중 가장 힘든 관문이 다가온 것이다. “다큐에서 1주일 동안 잠을 안 잔다는게 연출인 줄 알았어요. 카메 라 없을 때는 재워주겠지. 그런데 진짜였어요. IBS(고무보트)를 머리 에 이고 걸어가는데 신호가 걸리면 그 잠깐 동안 서서 잠을 자요. 나 중에는 걸어가면서 꿈을 꾸고. 아기나 놀이공원이 환영처럼 보이는 경험도 다들 해요.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늘 올거라고 생각했던 순 간이었으니 이겨낼 수 있었어요. 죽음이 다가오는걸 알지만 피할 수 는 없고 이 관문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이겨낼 수 있었죠.” 드디어 지옥주가 끝이 났다. 그것을 이겨낸 자부심을 상상이나 할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41 Vol.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