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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ople “해병대 출신 분들의 응원도 많았어요. 누가 와서 ‘공인이 욕을 하 면 안 되죠.’ 라고 써놓으면 예비역 해병 분들이 댓글로 다 커버해주 셨죠. (웃음)” 그 이후로 ‘해병대 출신’ 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니게 됐다. 그리고 해병대 중에서도 가장 강한 이들만 도전할 수 있다는 특수수 색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팬들의 호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흔히 말하는 ‘까임방지권’. 데뷔 이전에 그는 이 ‘까방권’ 을 획득한 채 출발하게 된 것이다. “유도학과 안에 합기도부가 있었어요. 매일 두드려 맞기도 하고, 온갖 힘든 훈련을 마쳐야만 배지를 받고 진정한 부원으로 인정받게 되죠. 그런데 중간에 선배들의 눈 밖에 나면서 쫓겨나게 됐어요. 억울 했어요. 선배들의 개인적 감정 때문에 쫓겨났는데 마치 그 힘든 과정 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시선을 받았으니까요.” 마침 촬영차 학교를 방문한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무술감독이 되 려면 군대를 빨리 다녀오고 도움이 되는 곳을 다녀오라는 말을 듣는 다. 그 때 해병대 수색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때 다큐멘터리에서 본 말도 안 되게 힘든 군대가 생각난 것 이다. “선배들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무술감독에 대한 꿈. 그 두 가지가 디졸브된 거죠. 여길 다녀오면 선배들도 아무 말도 못하겠지. 그리고 무술감독의 꿈을 위해서. 여길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찾아 봤더니 여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도 전하게 됐어요.” 그런데 떨어졌다. 체력테스트에서도 모두 일등을 했는데 수영이 문제였다. 친구들에게 해병대 수색대에 간다고 공언해놓은 상태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3개월 동안 아줌마들과 새벽반에서 수영연습을 하며 다시 해병대 수색대에 도전하였고 그렇게 그는 해 병이 되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반대한 부모님을 뒤로하고 입대 전 날 혼자 포항으로 내려갔지만. 다음 날 아침 교육훈련단 입구로 들어가는데 부모님이 와 계셨다. “감동이었죠. 장남이어서 괜히 강한 척 했지만 늘 감동이었어요. 훈련소에서 어머니께 온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처음에 써진 ‘아들 아’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동기들이 보고 있으니 화장실로 뛰어가서 엄청 울었어요. 하지만 교육훈련단에서의 훈련병 시절을 ‘행복했다’ 고 표현했다. 이 사람. 너무 남자였다. “우리 수색병과 애들끼리 있으면 매일 수색대 얘기를 하는데, 잘 모르지만 자부심을 키워가요. 하루는 멀리서 베레모 쓴 3명이 걸어오 는데. 너무 자유롭고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선배 수색대원들이었는 데 정말 남자를 본 느낌이었어요. 세잎클로버 안에 네잎클로버를 발 견한 느낌. 꿈에도 나올 정도였죠.” 수색대를 향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사실 어떻게든 요령을 피려는 분위기도 있는 훈련소 안에서 그는 이러다 수색대 가면 죽을 수도 있 겠다는 생각에 남들 쉬는 시간에도 운동을 했다고 한다. 최고로 강한 남자가 되려는 열망, 그리고 무술감독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훈련 과정이 물론 힘들기도 했죠.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항 상 ‘나는 세계 최고의 무술감독이 된다’ 고 되새기면서 훈련을 받았어 요. 공수훈련 당시 막타워에서 뛸 때 다들 애인이나 부모님 이름을 부 를 때 저는 ‘세계 최고의 무술감독이 된다’ 면서 뛰어내렸어요.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