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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ople 람들이 무시를 하더라고요. 네가 작가냐는 무시였죠.” 보기 좋은 그림이 전부가 아니다.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람 들은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데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작품들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영화나 소설을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 만 결국 경험한 것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 을 했느냐는 것이죠.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할 수 있 지만 군대는 딱 한 번 밖에 없어요.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인 것이죠. 2년 가까이 전국팔도에서 모인 별별 군상들과 서로 웃고 싸 우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 경험은 절대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인 거예요. 그래서 만화가 뿐만이 아니라 작가를 꿈꾼다면 꼭 경험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작가로서 전역한 후 10년이 넘도록 그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던 경험인 거죠.” 이 사람 정말 해병대를 안 나왔으면 큰일 났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컷의 그림에도 온갖 정성을 쏟기로 유명한 그다. 그 작 가주의의 이면에도 해병대에서의 경험이 교훈이 되었다고 한다. “저를 미워하고 또 저도 싫어하던 선임이 있었어요. 이 선임이 전 역하기 전에 누나 사진을 주면서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거예요. 그려 주기는 싫은데 안 그려줄 수는 없고. 그래서 정말 대충 그려줬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난 누나의 사진이었던 거예요. 너무 미안해지는거죠. 나는 대충 그려줬는데 그 선임은 너무 좋아하면서 코팅까지 해놓았으니. 하지만 다시 고쳐서 그려줄 수도 없고. 나중에 생각해봤는데 작업을 한다는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이 미 내 손을 떠난 그림을 누군가는 평생을 간직해서 살 수 있고. 그런 걸 본다는게 스스로도 마음이 무거운 일인거죠. 아무리 간단한 작업 이라도 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게 무성의하게 넘기는 것 차라리 안 해주는 게 낫지 내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사실 워낙 다방면의 일을 하는 그이다. 그의 작업실을 찾은 날에 목격한 작업만 해도 4가지 작업쯤은 되었다. ‘괴물’의 마무리 작업, 여 중생을 위한 공부법 교재의 삽화 작업, 해부학 서적 집필 작업, ‘나는 가수다’의 일러스트 작업 등. 그 많은 양을 최고의 수준으로 처리하기 위해선 어지간히 독하지 않고서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 시절 너무 인상 깊었던 표어가 ‘안 되면 될 때까지’였어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막연한 것 같아요. 하지만 ‘될 때까지’는 정말 독해 보이잖아요. 그 마인드가 도움이 많이 돼요. 그 전에는 독하다는 소리 를 들은 적도 들을 기회도 없었어요. 이제는 그냥 말 그래도 될 때까 지 하는 거죠. 줄 때는 별로 안 힘들 었던 것처럼 굉장히 쿨하게 주는 데, 할 때는 눈에 불 키고 하는 거죠. 펜마우스에 빵꾸가 날 때까지.“ 완성은 성공이다. 성공해 본 사람이 또 다른 성공을 거두기도 쉬운 법. 그는 하루하루의 목표를 달성해나가고 있고, 그것이 쌓여 습관이 되고 먼 미래의 목표를 이뤄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목표 역 시 구체적이고 대담하게 갖고 있었다. 그의 데뷔작 귀신이 프랑스에 출간되면서 대형 서점 사인회를 하게 된 것도 그의 목표가 실현된 순 간이었다. “훈련소 첫날밤에 잠이 안 와오는데 너무 막막한 거예요. 첫 휴가 를 가는 날이 오긴 올까 싶고. 전역하는 건 더 상상이 안 되고. 그러다 보니 상상이 꼬리를 무는 거예요. 2년 후, 5년 후 10년 후를 상상하다 가 외국인한테 둘러 쌓여있고 제가 사인을 해주는 상상을 했어요. 그 리고 ‘10년 후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야지’ 혼자 좋아하면서 일기에 써 놓았죠.” 그리고 1997년 6월 12일. 정확히 3650일이 지난 날. 작업실에서 프 랑스행 티켓을 뽑고 있던 그는 입대 10주년이라는 동기의 전화를 받 고 문득 그 사실을 떠올렸다.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10년 전 상상했 던 모습이 프랑스에서의 사인회로 현실이 된 것이다. 절실하면 되는 구나. 그 때부터 항상 그의 목표는 구체화되어갔다. 그렇다면 작가로 서의 그의 최종 목표는 어떤 것일까. 그 목표는 2008년 전 세계의 CG, 광고, 영상 전문가들이 모두 모이는 ‘시그래프(SIGGRAPH)’ 행사에 참석하면서 그의 가슴에 새겨지게 된다. “유럽의 작가주의 애니메이터 프레드릭 백이라는 분이 계세요. ‘나 무를 심는 남자’ 라는 작품을 3년간 수작업으로 만드는데 화학약품이 너무 독해서 한쪽 눈이 실명이 되신 분이예요. 아흔이 넘으신 그 분이 세미나 무대에 부축을 받으면서 입장을 하는데 전 세계 전문가들이 모두 기립박수를 치는 거예요.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저게 작가의 끝 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작가를 지망한다면 저 모습이 되어 있어야 한 다. 전 세계 많은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작가. 그게 저의 목표예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모해 보이는 목표이다. 실현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는 자신만만했다. “목표를 잡은 건 다해왔어요. 그림은 목표설정을 안하면 절대 완수 가 안 되거든요. 의뢰인이 원하는 이미지. 그게 나의 단기적 목표가 되는 거죠. 성공도 버릇이 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자잘한 성공 을 못해본 사람이 큰 성공을 꿈꾸는 것은 말이 안 되는거죠. 미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