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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마다 교재의 바이블로 통하는 책들이 있다. ‘수학의 정석’ 은 시대가 변하면서 ‘개념원리’ 에게 그 자리를 내어 줬고, 아버지 세대의 ‘성문영어’ 의 왕좌는 ‘맨투맨’ 으로 넘어갔다가 요즘은 수많은 교재들의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든 느낌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프로그램 ‘페인터’. 이 프로그램 에도 바이블과 같은 교재가 있다. 그 책은 바로 ‘석가의 페인터’. 석가 라는 필명의 그림고수가 써낸 이 책은 페인터를 공부하는 이들이라 면 한 번쯤 들춰봐야 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연재를 안 하니 만화가란 명칭을 쓰기가 좀 미안해요. 그래서 요 즘에는 그냥 그림꾼이라고 불러요. 일러스트나 만화일도 하고, 애니 메이션일도 하고, 영화일도 하는 거죠. 정체성이 모호하다는게 어쩌 면 다행이예요. 다양한 컨셉의 작품이나 시도를 할 수 있다는게 저의 자부심이죠.” 석가. 혹은 석정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뭔가 딱 정의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그림 그리는 이 남자.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이 들 사이에서는 한국 최고의 그림꾼으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다. 특히 2010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쩨쩨한 로맨스’ 에서 그림과 관련 된 모든 작업을 담당하면서 그의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도 서서히 알 려지기 시작했다. 자유분방할 것 같은 만화가의 기억 속에 해병대는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좁고 더운 방. 한편으로는 명성에 걸맞게 정말 복잡하고 정리 안 된 그의 방에서 해병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 작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밤이 깊어지도록 해병대에 대한 이 야기 샘은 마를 줄을 몰랐다. “2사단 보병연대에 있다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차출되어서 사단 본부 인사과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어요. 먼저 간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혼자 그림 작업을 하기에 버거웠나봐요. 그래서 제가 잠깐 파견 나갔는데 눌러 앉게 된거죠. 2사단 간판부터 시작해 서 정말 많이 그렸죠.(웃음)” 고등학교 친구는 768기. 하지만 그는 807기였다. 친구와 함께 해 병대를 지원했지만 친구는 합격하고 그는 떨어진 것이다. “한두 번 정도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나중엔 정말 오기가 생겨서 6번 정도 지원을 했어요. 나중에 합격했 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대학교 합격했던 것보다 더 기뻤어요.” 6번을 도전한 것은 일종의 오기였을 수 있지만 그만큼 해병대에 대한 열망도 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해병대를 선택한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 “제가 독자였고 아버지 연세도 많으셔서 편하게 갈 수도 있는 상황 이었어요. 근데 기왕 갈거면 나중에 적어도 군대 얘기만큼은 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고생을 많이 안 해 봤다는 콤플렉스가 있었고요. 독자에 늦둥이여서 귀하게 컸죠. 좀 당 당해지고 싶었어요.” 부모님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아버지가 하지 말라니 가고 싶 은 마음은 더 커져버렸다. 입대하는 날에는 학교 가듯 절도 안올리고 친구와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나중에 개인 물품을 집에 부치는데, 그걸 받으시고 그렇게 우셨더 라고요. 안내문 같은 종이 여백에 걱정하지 말라고 써서 보냈거든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써서 보냈는데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가 싶은 경험을 하게 된 거죠.(웃음)” 6월. 그 뜨거웠던 여름날의 냄새는 아직도 그의 코끝을 맴돈다. “고생을 안 해본 것이 콤플렉스였을 정도로 내 멋대로 하고 살았는 데, 군대라는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신병 훈련 때의 공기 자체를 못잊겠어요. 대학교 선배들이 무서워봤자 얼마나 무섭 겠어요. 그런데 DI라는 분들은 정말 사람이 아닌 것을 넘어서 생명체 가 아닌 것 같았어요. 표정과 눈을 절대 안 보여주니까 생명체 같지가 않은 거예요.(웃음)” 대한민국 해병대 www. rokmc.mil.kr 33 Vol.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