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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출전권을 다투는 한국과 이란 축구대표팀간의 TV 중개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시간이었고, 역 인근에 위치한 삼남극장에는 전국의 인기를 휩쓸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와 가수 하춘화씨의 공연을 보기 위한 익산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인천에 있던 한국화약에서 화약 30톤(다이너마이트용)을 싣고 광주로 가던 이리역 구내 4번선 철로에 대기하고 있던 열차가 폭발한 것이다. 이로인해 사망 59명, 중상 185명, 경상자 1천158명으로 모두 1천400여명의 인명피해를 가져 왔다. 또 완파 건물 811동, 반파 780동 등 건물피해가 6천여동에 이르렀고, 이재민 수가 1천674세대, 7천873명에 달했다. 1977년 11월 11일 21시 15분! 13만 이리시가는 암흑과 상?의 수라장이 되었고 이리역 구내는 마치 처참한 지옥인 양 돌변했었다. 한 사람의 부주의로 수송도중에 화약이 폭발되어 막대한 재산손실 외에 고귀한 생명 희생이 56명, 그 중에서도 진화작업에 순직한 철도종사원 16명. 그들의 장렬한 죽음은 진실로 고귀하고 엄숙했었다. 육신의 생명은 비록 짧게 살고 사라졌다 할지라도 꽃다운 정신은 철도인들의 가슴 속에 깊이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