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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광(塩光) 박관준(朴寬俊) 장로(長老) 순교추모비문(殉敎追慕碑文) 한국의 델리야 도는 현대의 다니엘로 불리워지는 박관준(朴寬俊) 장로는 중일전쟁 당시 우가귀(宇垣:우원) 조선총독과 미나미(南:남) 조선통치하에서 가장 용맹 과감하게 신사참배 강요탄압에 결사적으로 항거하여 특히 중일전쟁 당시 제74회 일본제국 중의원(衆議院) 국회의사당에 독자(獨子) 박영창(朴永昌)씨와 안이숙(安利淑)양을 동반하고 국회의사당에 잠입하여 고야마(小山:소산)의장이 개회선언 벽두에 「여호와 하나님의 대사명이다」 부르짖고 폭탄적인 폭정 철폐의 경고문을 장내에 투척하고 현장에서 3인이 같이 체포되어 투옥 6년간 옥고 끝에 드디어 순교를 하셨다. 이로써 향년 70세로 한국기독교가 낳은 신앙 위인으로서의 생애를 끝마치시었다.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됨) 미망인 고 이관선(李寬善) 집사(효녀와 열부)의 정문. 나림 유자 박영창(朴永昌) 목사, 딸 박성덕(聖德), 현덕(賢德), 윤덕(潤德), 숙덕(淑德) 자부 이정애(李貞愛) 권사, 손자 박영남(朴英男), 손부 공귀자(孔貴子), 증손자 박신철(朴信哲) 동철(東哲), 인천(仁哲) 1993년 8월 15일 광복절 대구달서교회(당회 장오용 구목사) 추모하는 유지 교우들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