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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심종면의 송덕비가 숨어있다. 이른바 '3000명 부대'로 불린 인민군은 1951년 음력 정월 초하루인 2월6일 청천면 관평리에서 출발해 이평리 백골을 거쳐 사담리에 들이닥쳤다. 이들는 사담리와 상신리는 물론 청천면사무소와 지서, 우체국 등 공공건물을 불태우고 민가에 들어가 식량을 약탈한 것이 10여일 지속됐다. 2월18일, 인민군은 국군의 공세에 밀려 퇴각했고 상신리 등의 마을엔 국군이 주둔했다. 마을 주민들이 국군을 환영하기도 전에 국군 880부대는 마을을 불태웠고 마을은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11살이었던 박재준(71·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씨는 피난갔다가 먹을 것을 가지러 마을에 돌아왔지만 마을은 국군의 횃불에 불바다가 되고 있었다. 국군은 주민들이 집 안에 있던 살림살이며 식량까지도 갖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졸지에 알거지 신세가 됐다. 혹한 속에서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큰 나무 밑이나 바위 아래에서 자거나 움막을 짓고 살아야 했다. 마을 주민들이 이처럼 곤경에 처했을 때 구세주나 다름없었던 이가 심종면 청천면장이었다. 심 면장은 마을이 불탄 지 7개월이 지난 1951년 9월22일 청천면장에 부임했다. 심 면장은 배고픈 사람에겐 밥을, 추운 사람에겐 옷을, 병든 사람에겐 약을 줬다. 심 면장은 국유림의 나무를 집 짓는데 쓴다면 벌채를 허가해 줬고, 식량으로 안남미(米) 5말씩을 무상으로 나눠 주는 등 주민 구호에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심 면장은 7년11개월 동안 청천에 근무하며 덕을 베풀었다. 상신리 주민들은 1953년 심 면장의 은덕을 잊지 않기 위해 '면장 심종면 송덕비'를 세웠다. 출처 : 뉴시스통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