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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빈은 1907년 8월 황해도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해주(海州),재령(載寧)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여 교남의병대장(嶠南義兵大將)을 맡았다.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 북부지방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러한 의병 부대들은 여러 개의 소규모 부대로 분리되어 유격전을 전개하였는데, 박기섭의진(朴基燮義陣),민효식의진(閔孝植義陣),허덕천의진(許德川義陣),이진룡의진(李鎭龍義陣),지홍기의진(池洪基義陣),연기우의진(延基羽義陣),박장옥의진(朴長玉義陣) 등이 있었다. 박정빈은 목천군수(木川郡守)를 역임하였고, 박기섭이라는 이름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황해도 평산에서 창의한 박기섭은 수하에 중군장 우병렬(禹炳烈), 유격장 이진룡(李鎭龍)을 주축으로 황해도 해주(海州),재령(載寧),평산(平山),백천(白川)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07년 12월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여 교남의병대장(嶠南義兵大將)이 되었다. 1908년 3월에는 황해도 평산, 동년 5월에는 황해도 동남의 각 군에서 70~8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8년 10월경에는 황해도 안악,곡산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유인석을 따라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