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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쌍계사, 선운사 등 유명한 사찰 등 문화재들에 대한 폭격도 될 수 있는 대로 피했다. 결국 그는 잇따른 명령 불이행으로 감봉처분을 받았다. 1954년 충주경찰서 서장으로 발령을 받은 그는 충주직업소년학원을 설립하여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불우청소년들에게 학업기회를 제공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좌익계열의 독립운동단체였고, 지리산 인근에서 빨치산 토벌시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온정적이었다는 이유로 진해경찰서장으로 재직시 좌익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차일혁 총경은 이후 공주경찰서장으로 좌천된 후, 1958년 금강의 곰나루에서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가 38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자살하였다는 설도 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