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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喊聲(함성) 2.9의거후 미 군정포고 제1호 “난동 및 파괴행위 금지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2.9의거 주동자였던 윤길순, 김광수, 이한종, 김민웅, 유필남, 이창중, 이달종, 성낙수, 배순복, 이환국, 방성근, 조귀남, 이원봉, 신기용, 이강연 등 15명은 체포되고 대전형무소에 끌려가 억울하게 조사 문초후 재판까지 받게 되어 집행유예 3년부터 벌금형까지 선고받고, 이 사건의 판결은 대법원까지 이어져 우익측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남침에 따라, 7월8일 우리고장 천안이 공산괴뢰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1946년 2.9의거 당시 극적으로 피신하여 북한에 있었던 오세환, 임두빈등 다수의 공산당원들은 인민군과 같이 천안에 들어와 2.9의거 인사와 가족들에게 악랄한 만행을 일삼아 공포와 초조감에 떨게 하였으며, 2.9의거 관계인사 전원은 살을 찢는 고문을 당했고, 잔인하게 살해된 애국인사들은 고 윤길순님, 최역산님, 이갑목님, 정영보님, 이규경님, 홍병렬님, 송하영님, 일곱 어른들이었습니다. 출처 : 천안 의용소방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