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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예산은 기호일대의 명향으로 옛부터 많은 인걸을 배출하여 우리나라 역사상에 광채를 더 하였다. 특히 구한말엽에 시대를 약간 선후한 양당이 있었으니 완당 김정희 선생과 수당 이남규 선생이다. 완당은 담계옹 방강운대완원의 청조 경학 내지 금석학을 받아들여 실사구시학을 이룩하는 한편 우리나라 서법 예술의 신기축을 열었고 수당은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의 근기학풍 즉 경세치용학을 이어받고 겸하여 우리나라 고문 문장의 최고 수준을 달성하였다. 이와 같이 서예와 문장도의 쌍벽을 이룬 양당은 예산의 자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사의 빛나는 기록이 된다. 흔히 근세의 문장을 논할 때에 창강 김택영 매천 황현 영재 이건창과 함께 수당을 열거하여 4대가로 칭하거니와 그 중에서 수당은 현직 관인으로 국보간난한 비탈길에서 심애치성으로 가차없는 현실파악과 조리있는 사실서술과 탁월한 문장력을 발휘함으로써 소차를 위시한 그의 산문문학은 역사적으로 불멸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러나 선생의 존재를 영원히 살아있게 한 것은 그의 충절이다. 충절이라고 하여 유교사회의 일반적 충절이야기 아니다. 극진한 애국순성으로 일관된 생애와 장렬한 순국의 최후가 그것이다. 선생은 일찍이 안동관찰사 함경도 안무사 궁내부 특진관을 거치면서 한 관인으로 정사에 최선을 다하여 나라를 붙들려고 했지만 그것이 안되자 향리에 돌아와 의병운동과 성기를 통하여 외세를 배격하려하였다. 홍주의병장 민종식을 집에 숨겨 보호하면서 대왜투쟁을 획책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