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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최용철 선생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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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 등이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사실을 전해듣고 3월 6일 아침에 박용화(朴容和)·박성용(朴性堯)·황우경(黃宇京)·황금채(黃金彩) 등과 만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서로 다짐한 후 이날 오후 7시경 부여군 임천읍(林川邑)에서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절규하며 면사무소와 공립보통학교로 몰려가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피체되었다. 이해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상고하였으나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