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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되지 서천에 주둔하던 인민군 은 남로당 지령을 받아, 우국 애국지사들을 무자비하게 붙잡아 서천등기소 창고에 가두고 수용인원이 넘치자 대전 형무소로 이감,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에 따라 이곳, 서천등기소(현 서천중학교) 창고건물2동에 가둔 양민들을 퇴각 하루전날인 1950년9월27일 새벽1시, 창고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고 도주했으며, 대전형무소에 끌려간 사람들은 대형우물에 수장하는등 잔인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불길이 치솟는 화염속에"대한민국 만세"를 위치며 화염속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했고 얼마 후 등기소의 마당에는 시신을 찾는 유족들의 절규와 통곡으로 처참한 참상과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이제 그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사람도 하나 둘 세상을 등지고 노령의 생존자마저 증언이 또렸하지 못하다. 좌익 활동했던 사람이 한 동네에 살고 있다해도 당사자는 모른다. 그 때 그 사건을 아는 사람도 별로없고 알아도 모르는 척 아무 말이 없다. 이처럼 끔찍한 전국최대규모의 대 학살 방화사건이었으나 제대로 된 기록이 없는 실정이며, 사건 발생 1주일후, 현장을 방문한 미보병2사단 사령부(대령, 버튼엘리스)에 의해 만든 보고서가 현재 아이젠하웨 미국 대통령 도서관에보관되어있으며, 보고문서에는 280명으로 기록 된것이 확인됬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60년, 뒤 늦게나마 충청남도와 서천군, 그리고 한국자유총연맹 서천군지부, 서천군 자유수호희생자 유족회가 하나되어 2009년11월25일 위령탑을 건립, 제막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