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page


91page

국군이 초창기인 1946년 2월28일 국방경비대 창설된 제2연대는 초대 연대장이 이형근 장군이고, 제주도의 제9연대와 대전의 2연대와 임무 교대한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91page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대한민국 육군 ‘3大將’ 중의 한 축인 이형근(李亨根) 육군 대장은 1920년 12월 2일 충남 공주에서 미국계 상사를 운영하던 개화가정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오늘날의 경기고등학교인 경성제일고보에 입교한 후 다시 고향 인근의 청주고보를 마치고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조국광복 후 고향 인근의 대전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중, 1945년 11월 미 군정 당국으로부터 “한국군의 모체인 조선 국방경비대에 참여하라”는 끈질긴 권유와 이응준(李應俊) 장군의 권고를 받고 국군 최초의 간부 양성기관인 군사영어학교에 입교, 군번 1번의 육군 정위(대위)로 임관되었다. 1946년 2월 대전의 제2연대 창설에 전념한 그는 두 달 후 소령으로 진급과 동시에 국방경비사관학교 초대 교장으로 임명되어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9월에 다시 제2연대장으로 복귀했으나 채 한 달도 안되어 초대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겸 군기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48년 2월 대령으로 진급하여 통위부 초대 참모총장에 오른 그는 한국군 최초로 미 조지아주의 포토 베닝 미 육군보병학교의 고등군사반에 입교하여 교육을 받았으며, 그러던 중 준장으로 진급과 함께 주미 한국대사관 초대 무관에 임명되어 대미 군사원조 획득을 위한 군사외교에 나섰다. 1949년 6월 귀국 후 강릉에서 신설될 예정이었던 제8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사단창설에 주력하였으며, 6.25전쟁 발발을 5일 앞둔 1950년 6월 20일 대전에 주둔하고 있던 제2사단장에 보임되었다.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는 휴전협정 조인으로 전쟁이 일단 종결되자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여 합동참모회의 의장에 올랐으며, 2년 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58년 8월 16일 현역에서 물러나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이후 1961년 주필리핀대사를 시작으로 영국, 스웨덴,노르웨이 등 주요 국가의 특명전권대사로서 외교사절의 중책을 완수한 그는 1971년 향군회 고문과 1976년 반공연맹 이사장, 1980년 입법회의의원, 1981년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출처 : 전쟁기념관
91page

강원도 속초 사라저버린 이형근 장군 덕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