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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본관은 진주로서 성은 강이요 휘는 상백이며 아호는 수산이시다. 고려 현종 거란족난시 시조 명장 부원수 시호 은열공 휘 민담의 32세손이요 제주 입도조 형조좌랑 사헌부 대사간 윤희의 12세손이시다. 서기 1898년 무술년 5월 26일 중문면 대포리 1751번지에서 휘 강흥팔의 자녀 3남매중 독자로 탄생하였으며 서기 1918년 무오에는 동리 김해김씨 춘하여사와 혼인하여 3남3녀를 두시었다. 선생은 유시부터 인물이 비범하고 총명혜재출중하여 6세시 한문서당에 입학 15세까지 어간에 사략 통감과 4서3경을 독파하신 박학석사로서 근향에서는 당대 무비의 천재출생이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기 1916년 19세시 부터는 일제폭정에 저항하던 종문 보천교에 일시 간여하면서 서기 1919년 기미3.1운동을 전후하여 중문주재소 습격 방화사건에 주요 배후인물로 활약하는 등 일련의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관계로 관헌의 지목하에 장기간 은신기거하다 서기 1922년에야 육지출타의 기회가 도래했는데 은피생황중 가정에서는 사모 김여사와 여동생등이 중문주재소에 연행되어 극식함 고문을 당하는 일방가택 수사와 감시가 후속되었다. 여사한 연유로 서기 1924년 부득기 육지부에 솔가하여 약 7개성상을 이거하다가 서기 1930년 경오에 급기야 환도하게 되었으며 장달리 감수동 정착후에는 한문서당을 개설 훈학하면서 소학교 미취학의 아동들을 취합하여 후진교육에 전념하셨다. 연이나 서기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