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page


222page

취지문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우고 38선 전역에서 남침했다. 불과 사흘만에 서울이 함락당하고 80여일 만에 한반도 대부분이 점령되어 낙동강 유역이 주저항선이 되었고 정부는 부산으로 옮기는 비통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어 중문중학교 재학생 90여명이 구국의 일념으로 자원입대 출정했다.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전선을 사수함은 물론 세계 전사에 빛나는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을 성공시키고 육군은 38선을 넘어 북진, 평양을 함락하고 국경인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해병대는 원산상륙에 이어 함흥을 탈환하고 평양과 원산작전을 차단하여 UN군 작전을 유리하게 하였다. 개마고원 장진호전투에서 중공군 참전으로 영광된 조국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흥남철수를 시작으로 1951년 1.4후퇴를 하게 되었다. 국군은 후방에서 군사력 증강과 군비를 재정비하고 북진하여 서울을 재탈환하고 장단지구전투와 철원백마고지탈환, 도솔산전투 승리등 혁혁한 무공수훈을 세웠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때까지 3년 1개월간 처절한 전투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산화한 참전동문들께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늦었지만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출정했던 전쟁영웅 모교 학도병을 영원히 길이길이 빛내고자 이 기념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