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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김여석의 본관은 김해이며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낙선리 1911번지에서 부친인 유향좌수 김대일과 모친인 평택임씨 사이에 차남으로 고종 30년인 서기 1893년 12월 6일에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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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께서는 향교 훈장으로 충과 효를 교육 목표로 구우면 낙천리에 후학과 인재양성에 힘쓰시고 계시던 중에 한일강제병합(1910.8.29) 후 일본의 잔학성과 횡포에 울분을 느끼고 계시던 중에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제주조천 만세운동 조선독립회생회의 군자금 모금운동과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이 전개되자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한 낙천리 훈장 조무빈, 저지리 훈장 박세현, 신촌리 훈장 신계선 등 40여명 다수 청년을 규합하여 소를 잡아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도민을 규합하여 궐기를 촉구할 목적으로 "일제를 타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격문을 만들어 제주 전역에 부착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10월 5일 정사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박세헌 징역 3년, 조무민, 신계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6개월)를 치렀습니다. 이 사건이 제주 5대 항쟁 중 하나인 기미만세운동격문사건입니다. 공께서는 그 후에도 1939년 11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종가의 세보를 편찬하며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천명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단발령을 거부하였고 몸소 상투를 트시고 모범을 보이시는 등 항일운동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1961년 1월 15일 향년 68세로 작고 하셨습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을 높이 기리어 광복 60주년을 맞아 2005년 3월 1일을 맞이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에 우리마을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고개를 숙이며 애국애향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본보기를 자손만대에 기리고자 이 비를 세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