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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본은 한양조씨 남원공파 입도 시조 교수관 휘 방좌조의 12세손 휘 용하의 5남 3녀 중 5남이시다. 공은 서기 1886년 7월 21일(고종 23년) 한경면 낙천리 1927번지에서 가선대부 겸 유향좌수 휘 용하와 정부인 김능이씨 사이에서 태어나셨음. 유년기인 1894년의 민란 동학혁명과 개혁파의 갑오개혁 등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혼미속에서도 문빈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훈장의 자질을 갖추고 구국정신의 싹도 성장하였음. 청년기인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외지서당 초빙훈장으로 순회하며 배일사상과 자주독립 정신을 훈육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독립운동을 제주도 전역에 확산할 목적으로 동네훈장 김여석 저지훈장 박세현 신촌훈장 신계선 등과 합심하여 40여 명의 청년을 규합하고 "일제를 타도하자"라는 격문을 만들어 천제의식을 지낸 후 제주전역에 격문을 붙이다 일본경찰에 정사범으로 체포되어 징역1년 집행유예 2년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셨으며 일본경찰의 밀착감시로 생업이 어렵자 1923년경 식속을 대동 일본에 건너가 통항조합을 만들고 제주-일본 사이를 운항하는 대판지점을 개설 운영하는 한편 1932년 이재수의 동생 이순옥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재수난중일기를 발행 판매한 바 있음. 1945년 적지에서 광복을 맞이하여 1948년 귀국을 목적으로 단신 입국하였으나 4.3광풍의 위험을 감지하고 또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52년 10월 4일 67세를 일기로 타계하셨음. 1999년 제주보훈지청의 안내에 따라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였으며 2018년 독립유공자로 확정되자 국내에 직계자손이 거주하지 않으므로 외손녀 이정자를 유족으로 선임하고 동년 8월 15일 거사 100년 만에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여 명예회복이 이루어졌음. 공께선 서당과 사회교육을 통하여 애국정신과 후학양성에 힘쓰는 한편 몸소 구국운동에 참여함으로써 후세들의 귀감이 됨으로 그높은 뜻을 기려 이 비를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