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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원) 합동봉제단 우리 한양조씨의 시조는 휘 지수(之壽)이시다. 공은 중국 송나라 1대 황제 휘 조광윤(趙匡胤)의 8대손 익(翼)의 2자이며 1160년 고려 이종 14년에 우리나라에 건너와 고려조에서 험의중서사를 지내셨고 조선조가 개국하자 후손들이 한성으로 이거하여 본관을 한양으로 정하였으며 개국 1등공신을 비롯 일문육절(一門六節)의 충신과 명신현유를 많이 배출하였음. 남원공파 입도중시조는 입도 1세 교수관 휘 방좌(邦佐)이시다. 공은 충무공 휘 영무(英茂)의 3자인 남원부 절제사 휘 전(琠)의 8세손이며 계유정난에 의한 일문육절의 비극과 기묘사화 등에 의한 멸문지화를 피하여 1520년경 휘 방보(邦輔)와 함께 제주에 낙향하였으며 입도당시 주자(朱子)와 여동래(呂東萊)가 편찬한 근사록(近思錄)을 반입하여 유교철학의 전파를 비롯 많은 후학양성에 기여하였으며 후손들은 제주일원에 고루 분포하여 살아가고 있음. 조수파 1세는 입도 6세 휘 시운(時雲)조이시며 1670년경 휘 시용(時龍) 휘 시운(時雲) 형제가 조수에 입거 집성촌을 형성하여 많은 인재를 요로에 배출하는 한편 도문중회의 발전을 위하여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 낙천파 1세는 입도 10세 휘 종득(宗得)조이시고 1780년 초 낙천에 정착하였으며 방좌조계 최초 족보인 계유필보 서문을 쓰신 대문장가 휘 문빈(文彬)조를 비롯 항일 애국지사와 공직자 등 각계 각층 지역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음. 유구한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온 조상의 근원과 사적을 밝혀 알림은 선대의 유업과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제족의 화합과 친이를 돈독히 하기 위함임을 깊이 인식하는 한편 항상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흠모하여 왔으며 급변하는 세속의 변혁에 따라 존립의 영안을 더욱 공고히 보전하고자 각처에 산재해 있는 휘 종득(宗得)조 묘를 비롯 휘 영환(永煥) 휘 용하(用夏) 3대조고비묘를 제족의 지성을 모아 새로 마련한 이곳 영지에 유택을 마련하였아오며 여기에 뫼신 영령 제존위의 시제를 성심성의를 다하여 대대손손 봉향하고자 합동봉제단을 지었나이다. 이는 오상(五常)의 기본정신에 기인한 효심의 발로이오니 자손들의 무례하고 부족한 점 해량하시고 고히고히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