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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육군대령 밀양박공 진경 추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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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 1948년 5월 6일, 무장대 총책인 김달삼과의 '4.28 평화협상'의 주역인 김익렬 연대장을 해임하고 그 후임으로 부임한 박진경 중령이 9연대장(그는 1948년 5월 15일자로 제11연대에 합쳐지면서 11연대장이 됐다)으로 취임하면서 퍼부은 죽음의 묵시록이다. 제주도민을 몰살시키겠다는 이 잔인한 발언은 곧 오차없이 제주섬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양민과 폭도의 구별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중산간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체포작전'으로 연행한 결과 무고한 양민 6,000명이 끌려갔다.(조선일보, 1948년 6월 12일) 이들 양민 중에는 어린이도 있었고, 젊은 여성도 있었고, 나이 든 노인들도 있었다. 제주지역 미군사령관 브라운 대령도 이 작전을 두고 당시 취재기자에게 "제주도의 서쪽으로부터 동쪽 땅까지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작전"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48년 6월 1일, 브라운 대령의 진두지휘 아래 토벌작전을 수행해 온 박진경 연대장은 미군의 총애를 받고 대령으로 특진됐다. 제주민중을 폭도로 몰아 '성공적인 작전'을 펼친 공로가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6월 18일 새벽, 박진경은 그의 작전에 반기를 든 부하들에 의해 피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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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 href=http://blog.ohmynews.com/rufdml/tag/%ED%95%98%EB%8A%90%EB%8B%98%EC%9D%98%20%EB%B2%95%EC%A0%95 target=_blank>내 마음속의 궁렁쇠라는 Blog의 하나님법정에 간 사람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