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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교장은 도내 일부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제주 4·3 초기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3·1투쟁기념위원회 부위원장, 제주도민주주의민족전선(약칭 민전) 공동의장단 취임. 민전의장과 부의장 등 3명은 2월 25일 제주도군정청 경찰 고문관 패트릿지(John S. Patridge) 대위를 방문하여 제1구 경찰서장 강동효 등이 배석한 가운데 3·1절 기념행사에 관한 의견 교환을 하였다. 그는 1947년 소위 3·1발포사건후 미군정청 포고령 위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는데 5월에 군정법령 위반으로 약식재판에 의해 5천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소위 ‘제주읍유지사건’으로 인해 1948년 12월 농업학교 수감됐던 주민들이 희생터가 되 버린 ‘박석내(박성내)’에서 희생당했다. 당시 박석내 희생자 중에는 현 교장을 비롯해 제주북교 교장을 지낸 김원중, 항일운동가 배두봉, 서울신문 제주지국장이상희, 현 교장의 아들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출처 : 고경철의 역사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