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page


52page

지영헌열사 생애 지영헌 열사는 1940년 4월 10일 충북 단양군 단성면 상방리 288번지에서 부 지봉구와 모 최옥녀 사이에서 1남2녀중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고향인 단양에서 초등학교(41회), 중학교(9회), 공업고등학교(5회)를 마치고 미래 사회의 중추적 언론인이 되겠다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1959년 4월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신문학과에 입학하였다. 학창시설에는 교우들과 우애가 돈돈하였으며 정의감이 강한 성품이었다. 우리나라 시민사회 형성의 첫 출발점이 되었으며,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민주운동이 일어났던 1960년 4.19혁명 당시 지영헌열사는 오전 10시 중앙대생 3천여 명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교문을 나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찰저지선을 뚫고 흑석동 명수대 고갯길과 한강 인도교를 건너 서울역에 집결한 지영헌열사와 중앙대생 시위대는 을지로 입구에 있는 구 내무부(3.15부정선거 지휘본부)로 향하게 되었다. 수 천 명의 저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오후 5시 경 내무부 정문앞까지 진출하여 동료 연좌데모를 벌이던 시위대에게 발포명령이 내려졌다. 이러한 결찰의 무차별 총격에도 굴하지 않고 동료 학생들과 스크럼을 짜고 항쟁하던 지영헌 열사는 두부 관통상을 입고 현장에서 사망하게 되었으며, 인근 백병원으로 이송된 이틀 뒤인 4월 22일에야 신원이 확인되었다. 그는 꿏다운 나이 만20세에 핏빛 외침 속에서 4월의 늦은 벗꽃잎과 함께 그렇게 스러져 간 것이다. 열사는 현재 서울시 성북구 수유리에 있는 4.19국립묘역 83호에 안식하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