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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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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랑리에서 파평윤씨 황(墴)공과 경주김씨 원상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덕산보통학교를 자퇴한 뒤 오치서숙에서 수학하고, 19세때인 1926년부터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였으며, 20세때에는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하였으며 22세때에는 월진회와 수암체육회를 조직하여 농촌운동을 통한 민족운동을 더욱 정열적으로 전개하였다. 윤봉길의사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인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라는 글을 써놓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청도를 거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 도착하였다. 일본군이 1932년 1월 28일 상해를 침공하여 점령한 후, 4월 29일 천장절겸 상해 점령 전승경축 기념식을 홍구공원에서 거행하게 되어 상해 점령 일본군 군정 수뇌들이 여기에 모이게 되자, 윤의사는 백범 김구선생이 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이에 특공작전을 감행할 것을 자원하였다. 윤의사는 단신으로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상해 점령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등 군정 수뇌들 7명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데 성공하였다. 윤의사는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5월 25일 현지의 군법재판에서 단심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11월에 일본으로 이송되어 그 해 12월 19일 2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윤봉길의사의 업적과 살신성인 정신의 높은 뜻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항해의거 제55주년 기념사업으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국민들의 성금으로 1988년 12월 1일 서울 양재시민의 숲 내에 매헌기념관을 준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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