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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동족상잔의 비극이요 16개 유엔회원국 군이 참전한 국제전쟁이요 그 인적 물적 피해가 막심하여 가히 세계전사상 손꼽힐 처절한 싸움이었다. 3년여 만에 휴전으로 일단락을 지은 이 전쟁은 한.미 양국 정규군에 의하여 이끌려졌으나, 우리 민족 수난의 때마다 늘 그랬던것 처럼 이 전쟁에도 의병들의 피와 땀과 애국지성으로 뒷받침한 비정규군에 힘입은 바 실로 컸다.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서 조직돈 유격백마부대는 전쟁중에 활약한 20여개 규격부대는 으뜸이었으니 그 병력이 2600여 명으로 가장 큰 부대였으며 서해안 일대의 대도, 철산반도, 월사리, 대화도, 신미도, 압록강입구, 청천강입구등 그 활동무대가 가장 넓었으며 교전 횟수가 500여회요. 적 3000여명 사살 중공군 생포 600여 명, 철도, 터널 교량 및 중요시설을 무수히 파괴한 외에 반공 애국청년 2800여명과 민간인 1만5천여명을 구출하는 등 그 전과면에서도 단연코 첫손이었으니 그 애국충정과 백절불굴의 투지에 있어서 어느 정규부대 어느 유격부대 보다 위에 있었음이라. 평안북도 일대의 치안대원과 오산학교 학생등 아어린 청소년들이 모여 군번도 계급도 그리고 무기도 지원다운 지원 조차 없이 부대장 김응수를 핵심으로 오직 나라 위한 일념에 북위 40도선을 넘다들며 싸우기를 3년, 이름없는 섬과 험한 산골에서 적탄에 쓰러진 전몰자가 552위에 이르렀으니 그 충절 그 투혼 아아! 더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생존동지들이 눈물로 바친 첫 추도식이 1952년 백령도였고 그 후 이곳 저곳 전전하며 위령의 제단을 쌓기 40년에 이제 월남 평안북도 유지들의 정성과 후원에 힘을 입어 여기 서울시민의 숲에 님들을 기리며 탑비를 세우노니 님들이여 고히 잠드소서! 통일조국을 지켜 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