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page

186 187 canada 캐나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기도 했던 캐나다는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7월 4일 1차로 해군 구축함 3척을 파견해 초기 부산-일본 간을 항해하는 수송선단의 호위 임무를 맡았다. 공군도 7월 21일 6대의 수송기로 편성된 공군 제426항공수송대와 조종사 22명을 파견해 각종 공수작전을 수행했다. 또한 여단 병력의 지상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캐나다군 제25여단을 창설했다. 참전 준비를 거쳐 11월 25일 선발대로 제2대대를 파견했다. 당시는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시기였다. 유엔군은 1951년 초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다시 서울을 내 주고 평택-안성- 원주-평창을 잇는 방어선으로 물러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거듭된 패전으로 유엔군 내부에 패배주의가 팽배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군 제27여단에 배속돼 중부전선에 투입된 캐나다군 제2대대는 가평전투에서 탁월한 전투능력과 전투의지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캐나다는 전사 312명, 부상 1,212명, 실종・포로 33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