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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137 강원도 원주시 시설개요 주소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 1667 GPS 37°24'10" N, 127°57'14" E 건립일 1954년 3월 15일 건립 제 1군 사령부 관리 원주시 시설종류 기념비 부지규모 660m 2 , 시설물크기 비 높이 6m, 기단 높이 1.8m 1951년 1월, 중공군의 신정 공세로 서울을 다시 내주고 피난길로 내몰렸던 1・4후퇴. 서울 점령을 위해 서부전선을 주공으로, 중부전선을 조공으로 기습한 것이 중공군의 신정 공세였다. 특히 북한군을 앞세운 중동부전선의 침공 목표는 원주였다. 그것은 중동부지역에서 원주가 갖는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원주는 동으로는 강릉, 서로는 서울, 북으로는 홍천, 남으로는 충주‧ 제천으로 연결되는 전략적인 요충이다. 적군도 이런 점을 노리고 원주를 거점으로 제천-영월로 남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충주-대전 방면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이렇게 급박한 위기 상황을 타개한 것은 미 제2사단의 용전이었다. 1월 11일, 미 제2사단은 프랑스대대와 네덜란드대대의 지원 아래 적군과 격렬한 공방전 끝에 원주지구를 탈환하고, 국군과 미 해병 제1사단의 도움으로 이 지역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 제2사단은 중공군 11월 공세 당시 군우리전투에서의 패배를 되갚아 줬다. 중동부전선에서 적군의 남하를 봉쇄한 이날의 전공을 기리는 원주지구 전투전적비는 유엔군이 원주를 지켜낸 역사를 상징하듯 여러 모양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전적비는 원주-횡성 방면 국도변 태장동 산마루에서 원주 시내를 지켜보고 있다. 원주지구 전투전적비 비문 천지를 뒤흔들던 포성은 잠들고 비오듯 쏟아지던 총탄도 사라졌다. 단기 4282년 1월 10일부터 2월 28일까지 전략요충지인 이 지구에서 인해전술로 덤벼드는 중공 제37군, 괴뢰 제5군단의 대적을 물리친 영웅적인 우리 제 5사단, 제6사단, 제8사단과 미 제2사단, 미 제 1해병사단 그리고 홀랜드 부대 및 불란서 부대 용사들이 아니었던들 이날의 이곳이 있었을 것인가. 뼈에 사무치는 6·25동란으로 조국의 가쁜 숨이 경각을 다툴 때 임들의 몸은 방패가 되어 온 겨레의 가슴에 꽂힐 화살을 막았고 그 흘리신 피는 이 땅에 스며들어 우리나라를 영원히 받들 것이다. 여기 임들의 빛나는 충성과 영용무쌍한 모습을 후손들로 하여금 이어받도록 하며 아울러 전몰영령들의 명복을 빌고자 이 돌을 깎아 세우나니 비록 이 돌은 닳아 없어질지라도 임들의 그 위대한 공훈은 저 해와 달로 더불어 빛을 다투어 이 강산을 밝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