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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7 1951년 유엔기념공원 묘역. United Nations 유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전격적으로 불법남침을 개시한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침을 강행했다. 이에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 평화와 한반도 안전을 위하여 한국에 군사원조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으며, 유엔 안보리는 7월 7일 유엔 회원국 군대를 통합지휘하게 될 유엔군을 창설하고, 유엔군 총사령관에 맥아더 장군을 임명한다. 유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유엔기를 앞세우고 유엔 21개국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집단안전보장 원칙’이라는 유엔의 기본정신에 입각한 사상 최초의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전투병력을 파견하고, 5개 국가가 의료지원단을 보내왔다. 그리고 40여 개국은 물자를 지원했다. 참전한 유엔 회원국의 대부분은 그들 국가 주변에서 점증하는 공산주의 위협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북한의 침공이 공산주의자들의 자유체제에 대한 공격의 시발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참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다국적군으로 형성된 유엔 참전국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종교, 식생활습관, 한국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추운 겨울 등으로 인해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해소돼 갔으며 서서히 하나의 군대로 탈바꿈했다. 유엔군 장병들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유 수호’라는 대의를 위해 전장이나 후방 지원을 통해, 그들의 목숨을 바쳐 명예롭게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