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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227 태국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중국과 북베트남의 공산화에 따른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런 영향으로 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유엔의 한국 지원에 호응해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전쟁이 일어난 지 5일 후인 6월 30일 국가의 주 생산물인 쌀 4만 톤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지지를 보냈다. 태국은 1,000명에 달하는 1개 보병대대와 프리깃함 2척, 왕립 태국공군의 C-47 수송기를 파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태국군은 11월 7일 부산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부산에 입항했다. 그리고 바로 대구의 유엔군 캠프로 이동하였고, 해군부대도 일본의 사세보로 이동하여 미 극동해군의 제95기동부대에 배속되었다. 또한 공군의 C-47 수송기를 보내 미 공군 제21병력수송대대에 속해 활동케 함으로써 태국은 육・해・공군을 모두 파견한 국가가 되었다. 태국은 6・25전쟁 중 그 용맹함으로 인해 ‘작은 호랑이’(The Little Tigers)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으며 6,326명이 참전하여 전사 129명, 부상 1,139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kingdom of Thailand 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