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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1년째 접어들면서 중부전선에서 무상한 진퇴를 보이던 1951년 5월 중순에 중공오랑캐는 승패를 건 총공세를 감행하여 그 예봉을 이곳 용문산으로 지향하였다. 여기에는 제6사단의 장병들이 청평강과 장락산맥을 방패로 삼아 사주방어진을 펴고 불퇴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었으니, 무리의 힘마을 믿고 진전으로 쇄도한 중공 제63군은 일보도 양보하지 않는 결사복멸의 화망속에서 48시간을 헤매다가 통격을 받은 나머지 마침내 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 호기를 놓칠세라 공세로 전환한 사단의 장병들이 진군의 선봉에 나서 기호지세로 38선을 넘어서니 좌우 인접사단이 또한 이에 호응하여 추격전을 편 끝에 10만 호적을 파로호에 수장하고 백현리를 밀고 올라가 크게 승세를 굳히게 되었다. 이에 당황한 적은 이제 세긍역전하여 구명의 돌파구를 찾고자 휴전협상을 제의하기에 이르렀으니 용문산의 승전고가 전 전선에 울려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