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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 정감이 넘치는 부대. 종로경찰서 방범순찰대 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되어 바람직한 전의경 문화 를 정립합시다 읽을거리 2 시간이 흘러 그 선임병이 제대를 하던 날에는, 그에게 품었던 서러운 감정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한편 , 상급기수가 된 나의 내면에서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질적인 성향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했다. 너그럽게 용인할 수도 있었던 후 임병들의 잘못에 대 해 크게 윽박지르는 내 모습이 가끔은 싫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비단 나의 경우에만 해당 되는 문제가 아니라 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함께 신병 시절을 거쳐온 사람들이 각자의 날카로운 성격의 일면들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래서 나는 고민해보았다. 고참이 될수록 속이 넓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지고 사소한 것에 대 한 집착을 버리지 못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군대라는 곳이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근무로 인한 신체적 피로, 타지생활의 어려움 . 단체생활의 불편함. 철저한 계급사회에서의 애로사항. 규율적 생활습관 등등. 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 럭 적응하게 되는 것 이 보통이다. 문제는 위와 같은 특수한 환경과 신분에 의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는 것이다. 군대라는 곳은 감정의 표출이 다소 제한되는 면이 있다. 힘들더라도 힘든 티가 나지 않아야 하고, 화가 나더라도 꾹 참아야 할 때가 많 으며, 슬프거나 서러운 감정이 밀려와도 동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때때로 군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고 달프고 서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겉으로 드러낼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기에, 스트레스 는 자꾸만 속에서 쌓 여만 가는 것이다.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는 언젠가는 결국 폭발하고 마는데, 불행히도 그 화살이 후임 병을 향하게 될 가능 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의지하고 공감하며 독려해야 할 대상은 결국 우리들뿐이라는 사실을 . 가끔가다 신경이 예 민해져 부대원들에게 섭섭함이나 분노를 품게 될 때면, 나는 제 작년 십일월의 풍경을 떠올리며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곤 한다. 논산훈련소 정문 앞의 국밥집을 가득 채운 까까머리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애인들. 대부분 한 달을 못 가서 수명을 다할 중국산 전자손목시계와, 정작 써보면 별 것 아닌 기능성 깔창, 그리고 여분용 고무링을 팔던 상인들의 모 습. 끝까지 태연한 표 정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시던,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눈물을 보이시고 마는 우리의 부모님 들. 나름 씩씩하게 활 짝 편 어깨의 모양새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그래서 더욱 안쓰럽기만 한 뒷모습으로 연병장을 향해 똑바 로 걸어가던 아들들 의 악문 이. 뻔하디 뻔한데도 애틋할 수밖에 없는, 결국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로 치환되는 훈련소 의 풍경들. 이렇듯 우리는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사연들을 품은 채, 그리고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출발해 비로소 이곳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중에 있다. 때때로 우리는 각자 너무나 다른 존 재들처럼 비쳐지지만 서도, 우주의 역사가 하나의 작은 점에서부터 시작하였듯이, 우리들은 커다란 공통분모 안에서 상호작용 하는 하나의 유기체 이기도 한 셈이다. 이런 우리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게 된다면, 그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언젠가 부대원들과 함께 인왕산을 오르게 된 일이 있었다.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가량을 걷자 인왕산 꼭 대기에 다다를 수 있 었고, 옅은 안개 너머로 서울시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한 건물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사 는 곳, 바로 종로경찰서 방범순찰대 건물이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그 건물은 거대한 서울시의 아주 작은 한 부분만을 차 지하고 있었다. 마치 작게 축소시킨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이는 그것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 니까 우리네 일상사의 전부가 겨우 저 작은 건물 안에서 그러자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은 어느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폴로 우주인들은 달을 왕복하는 도중에 그들의 고향 행성의 사진을 찍었다. 지구 주민들은 처음으로 그들의 세계를 밖으로 부터 지구 전체를, 천연색의 지구를, 광막한 암흑의 공간에 놓인 채 회전하고 있는 희고 푸르고 아름다 운 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상처받기 쉬운 한 행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이 조그만 점의 한 구석의 일시적 지배자가 되려고 장군이나 황제들이 흐르 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얼마나 빈번하게 오해를 했고, 서로 죽이려고 얼마나 날뛰고, 얼마나 서로를 지독하 게 미워하였는가?" -다음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