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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 현재 쌍분인 1호와 내원 외방형 고분이 기단만, 그리고 2호-4호 기단식 돌무덤들이 3단까지 복원되어있고, 5호인 즙석봉토분은 거의 원형의 모습으로, 2개의 토광묘도 시신을 넣은 구덩이만 복원되어있다고 한다. 석촌동은 돌이 나오지 않는 충적평야로 무덤들은 옛 송파나루의 남쪽에 있는 퇴적세토로 된 평지의 좀 높은 지점에 소재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석촌동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1916년 일제에 의해 조사되어 소개된 바 있는데, 조선총독부의 촉탁이었던 세키노 다다시에 의해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이곳에 적석총66기가 있었고, 토총22기가 주로 석촌동의 남쪽 및 동쪽에 군집 혹은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1969년 문화공보부 문화재연구소의 조사단에 의해 석촌동1,2호분이 발굴 조사되었고,1974년 서울대학교발굴조사단에 의해 제3,4호분이 조사되었다. 바위산도 없는 이곳에 돌이 많은 까닭은 병자호란 때 침입한 후금의 군대가 이곳에 진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옛 노인들은 말하지만 사실은 이곳에 돌로 축조한 고분들이 많이 소재하였기 때문이다. 1975년 석촌동3호, 4호가 사적 243호로 지정되었으며,1985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석촌동고분군의 보존 복원비가 책정되어 3호, 4호를 가로질러 도로를 만들려던 계획을 취소시켜 지하차도를 만들고(1990년 5월에 완료됨), 1987년까지 4회에 걸친 발굴조사를 거쳐 석촌동고분군 전체6기가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