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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열불 연합군은 북경에 침입하여 삼산오원에 불을 지르고 보물을 약탈했다. 1888년 西太后는 해군 예산을 유용하여 크게 개축하는 한편 이름도 이화원으로 개칭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해군을 총괄하던 光緖황제의 아버지 순친왕(醇親王)이 한편으로는 서태후의 비위를 맞추고, 한편으로는 아들이 실권을 가진 황제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해군 예산을 유용하여 은밀히 공사를 진행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훗날 淸日전쟁에서 중국이 패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00년 이화원은 또 한번의 수난을 겪었다. 義和團사건을 빌미로 北京에 침입한 8개국 연합군이 문화재를 약탈하고 건축물을 대파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서태후가 西安으로 피신했다가 북경으로 돌아와서 중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