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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인물 나라를 지킨 사람들 호국인물 나라를 지킨 사람들 고종석 일등병조 (1931. 12. 6. ~ 1950. 8. 25. / 2004년 8월 선정) ● 고종석 일등병조는 1931년 12월 6일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49년 3월 개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7월 에 해병 2기생으로 군에 입대했다. 최초 김성은 부대에 배치되어 지리 산과 제주도 일대 공비토벌 작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 그는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경남 진동리 지역 에서 북한군 제6사단 정찰대대를 기습 공격하 여 적의 침공을 저지함으로써 진동리-마산간의 보급로를 타개 하고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사수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낙동강 방어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북한군이 전략요충 지인 마산과 진해를 해상에서 봉쇄하기 위해 통영에 침입하자 고종석 당시 삼등병조는 분대장으로서 통영 장평리 해안의 한국 최초 단독 상륙작전에 참가, 이틀 만에 통영을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북한군은 통영지역 재진입을 위해 야음을 이용하여 역 습공격을 감행하는 등 수 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해 왔다. 고종석 분대장은 이에 맞서 선봉에서 백병전까지 치르며 적 3명을 무찌르고 도망치는 적 6명을 사살하는 등 공을 세웠으 나 끝내 자신도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때 적의 방망이 수류 탄이 호에 떨어지자 “엎드려!”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몸으로 수 류탄을 덮쳐 분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이를 보고 분기충천한 중대원들이 일제히 육박전을 감행, 적을 물리 치고 진지를 사수했다. 정부는 해병대의 투혼을 발휘하여 살신성인과 희생정신의 귀감이 된 고인의 공훈을 기려 대통령 특명에 의해 2계급 특 진인 일등병조로 추서했다. People 그때 그 사람 글 편집팀 성관식 소령 (1928. 5. 25. ~ 1958. 9. 24. / 2004년 9월 선정) ● 성관식 소령은 1928년 5월 25일 광주에 서 태어나 1951년 3월 수원농과대학을 졸업했으며,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 1일 해병대 소위로 임관 했다. 당시는 피아간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다 전선이 교착되어 고지쟁탈 전과 지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 기로 성관식 소위는 해병 제1연대 3대 대 2소대장에 보직되어 장단 일대에서 중공 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1952년 9월 6일 중공군은 대대규모의 인해전술로 성관식 소대장이 방어하고 있던 장단 사천강가의 36전진진지를 포위 공격해 왔다. 이에 성 소대장은 연대의 포병지원으로 적의 후 속부대를 차단시킨 가운데 교통호까지 진입한 적과 격렬한 수 류탄전과 육박전을 벌이며 진지를 사수했다. 특히 적군의 포격 으로 참호가 무너지면서 대원 5명과 함께 매몰되는 위기를 맞 았으나 매몰된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무전기를 찾아 교신을 재개, 아군 포병의 지원사격으로 고지를 포위하고 있던 적군을 격멸하고 진지를 성공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임진강 일대 아군 주저항선의 핵심요충지를 확보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성관식 소령은 해병대 교육단(현 교육훈련단) 에서 신병양성 교육에 힘썼으며 1958년 해병대 항공대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1958년 9월 안타깝게도 비행훈 련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31세를 일기로 순직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 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