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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스리가에서의 활약은 언론을 통해 대학시절 은사였던 윤성 효 감독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원일이 제대 후 다시 숭실대 축구부 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군대스리가에서의 활약이 매개체가 됐다. 그렇게 하고 싶던 축구를 제대로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시 그늘이 찾아온다. 부상이 그를 덮친 것. “군대 전역 후 숭실대에 복귀해서 첫 대회를 뛰다가 내측인대부상 을 당해서 2개월 동안 병원에서 재활을 했습니다.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힘들었습니다. 부상당해 경기에 출전 못한다는 것 과 1년 안에 나를 보여줘서 취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나간 첫 대회에서 입은 부상.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 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데 해병대 정신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정말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항상 힘들고 두려울 때는 무엇이 두 려우랴! 무적의 사나이! 하고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시 일어선 김원일 선수. 숭실대에서 축구 선수의 꿈을 계속 키 워나가던 그는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크게 기 대를 안 해서인지 드래프트 현장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문자 중계 를 보고 있었지만 그의 이름은 쉽게 불리지가 않았다. 그때 포항에서 그를 지명했다. 포항 스틸러스 6순위 김원일 지명. 우연인지 운명인 지 군 생활을 한 포항에서 또다시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2010년 그는 그렇게 포항 스틸러스 에 입단한다. 3년 전 포항 스틸 야드 관중석에서 팔각모를 쓴 채 축구를 보던 해병이, 포항 스틸러스 의 유니폼을 입은 채 당당히 스틸야드의 잔디를 밟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무렵부터는 주전 자리를 꿰차더니 포항 수비 의 핵심전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가 출전하기 시작한 이후 수 비불안에 시달리던 팀은 균형을 찾았고 전반기의 부실한 모습을 완 전히 벗어내기에 이른다. “전역 후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뿐이었습니 다.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그 무서움을 알았고 정말 낮은 곳에서 다 시 올라왔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주말에도 집에 가지 않고 항상 남 아서 운동을 했습니다.” 마치 우연 같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노력이 일궈낸 결과, ‘슈 팅라이크베컴’ 이라는 영화보다 더 기막힌 이 성공스토리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스틸야드에 울려 퍼지는 ‘팔각모 사나이’를 들을 때마다 그의 심장도 뜨거워진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스틸야드에서 팔각모 사나이가 힘차게 들려올 때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정말 고맙게 생 각합니다. 저희팀 선수 및 브라질에서 온 용병들도 해병대를 알고 있 습니다. 항상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항상 가슴이 뜨거워지는 스틸야드의 명물이자 자랑입니다.” 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