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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구조함과 소해함의 평시 운용체계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해군의 소해함과 구 조함이 모두 진해에 대기하고 있어 상황접수 후 전방해역까지 항해하는데 장시간 (20~40시간)이 소요됨으로써 적시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데 적지 않은 차질이 발생 한 것이다. 셋째, 정부 및 관련기관의 역할이 체계적으로 통합되지 못했다. 탐색·구조를 위해 청와대로부터 국방부·합참과 해군본부 및 작전사령부, 그리고 현장의 역할분담 및 노력의 집중은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청와대로부터 현장에 이르기까지 수직체계 는 물론 대통령실·정부 부처·국방부 및 합참의 부서 간 횡적인 협조체제, 그리고 해양경찰청(국토해양부), 소방방재청(행정자치부), 해양조사원·해양연구원(국토해 양부) 등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미흡했다. 넷째, 민간이 참여한 구조작전의 부작용도 있었다. 구조 및 인양작전 시 민간의 참 여와 지원은 여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실질적인 구조작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탐색작전 지연 등 많은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다. 구조작전 초기에 참가했던 민간인 쌍끌이어선도 작전 중 어장 및 어망 훼손 문제가 제기되면서 곧바로 철수해 자체 어로활동에 종사했다. 그 과정에서 철수했던 제98금 양호가 침몰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또한 민간업체 관계자는 자신의 휴대전 화로 언론과 직접 접촉해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 나. 함체인양작전 천안함의 함체인양작전은 깊은 수심과 유속 등 자연환경의 제한이 많았다. 그럼에 도 해저 25m(함수) 및 47m(함미) 깊이의 악조건하에서 뻘과 암반을 극복하며 인양 체인을 설치하는 등 고난도의 수중작업을 통해 함미와 함수를 안전하게 인양할 수 있 었던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대형 해난사고에 대비한 구조자산의 종합적인 관리미흡으로 초기 대응에 문 제가 있었다. 정부의 어느 부서에도 민·관·군의 구조자산을 통합관리하는 데이터 베이스(DB)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용자산의 통합운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주요 기관별 구조장비의 불균형, 구조작전에 대한 상호이해 및 공감대 형성이 미흡했다. 천 안 함 피 격 사 건 백 서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