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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보았던 이름없는 묘비가 성삼문 선생의 부친이신 성승(成勝)선생의 묘비일까? 왜 이런 역사적인것을 설명해 놓지 않았을까? 적어도 1580년 이전에 노량진에 모두 5기의 봉분으로 구성된 묘소가 있었으며, 여기에는 ‘李氏之墓’ ‘兪氏之墓’ , ‘朴氏之墓’ 라 표기된 묘갈 및 두 개의 ‘成氏之墓’ 라는 묘갈이 세워져 있었음이 확인된다. 민간에서는 사건 당시 노량진에 조성되었다는 내용이 구전되어 있으며 이것이 六臣의 墓라는 사실이 의심없이 받아 들여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7세기에 六臣에 대하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선비들 사이에 그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17세기말 숙종초에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게 되었던 것이다. 항간에서는 金時習(김시습)이 死六臣의 시체를 져다가 이곳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량진에 六臣墓가 조성된 경위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성삼문 등의 사적을 최초로 정리한 남효온의 <六臣傳>에는 그들의 墓에 대한 언급이 없다. 16세기에 許?(1551-1588)이 육신묘에 대해 언급을 하였다고 하나 그 이야기에도 막연히 사건 당시의 義士(의사)가 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냈을 것이라고만 하고 있다. 육신묘에 대해서 잘알고 있었다는 眉? 許穆(1595-1682)조차도 누가 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는지, 누가 묘갈을 세워 그 무덤을 표시해 놓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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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내용은 <a href=http://www.sungs.co.kr/board/board1/read.php3?page=3&number=745&search2=& target=_blank> [성우진] 朝鮮時代 死六臣 墓의 傳來 狀況(조선시대 사육신 묘의 전래와 상황)</a>를 참조하시길... <br><br>또 성삼문 부모인 성승(成勝)장군 부부묘가 충남 홍성 홍북면 대인리에 있다고 한다. 자세한것은 <a href=http://blog.daum.net/11757/16674712 target=_blank>여기를 </a>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