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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군인관의 형성과 전개 50 군사연구 제129집 어찌 각성하지 않을 것입니까. 원컨대 각하께서는 속히 큰일을 일으켜서 시기를 놓치지 마십시오”라며 이범윤에게 거병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의병(군인)은 위국헌신이라는 천명의 실천을 의무로 삼는 다는 그의 군인정신과 관련성이 있는 것이다. 하늘의 명령은 절대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중근의 경우 천의 실체는 그가 믿고 있던 천주와도 맞닿 아 있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천관(天觀)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도 지적 되어야 한다. 즉, 세종은 용비어천가 120장에서 “백성이 하늘이다”라고 선포하였 고, 동학에서도 인내천(人乃天)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한국인 안중근의 의식 내면에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안중근의 천은 절대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실체는 바로 국민들임을 알 수 있 다. 이러한 점에서 천명의 실현은 국가의 독립과 세계평화의 실현이라는 국민들 의 열망과 연결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중근이 거병을 천명이라 고 여겨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논리는 국가의 위망을 방관 하는 군인(의병)은 곧 천인 백성의 버림을 받는다는 그의 군인관과 상호 관련성 이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갖는 거병을 이범윤은 시기상조라고 하여 일단 거절하였다. 그러나 1908년 5월경에 들어서면서 대일전쟁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1908년 3월 21일 장인환․정명운이 부일성향의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의가가 일어나고 3월 말에는 함경도에서 의병이 일어나 무산방면에서 일본군을 궤멸시키고 무산시를 장악하는 등 5월에는 의병전쟁의 참여자가 11,400여명에 달하였으며 6월에는 31,245명으로 급증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안중근은 4월경 갑산의 홍범도를 찾아가서 연합을 시도하 였으나 실패하였다. 다시 6월 홍치범․윤치종․김기열을 대동하고 회령방면에서 홍범도를 만나는 등 지속적으로 국내진격작전을 모색하였다. 이범윤도 5월초 연 추를 떠나 훈춘의 산악지방으로 이동하여 거병을 모색하였고 노령한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최재형도 이위종과 더불어 의병부대의 조직에 분주하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압력을 받고 있던 최재형은 바로 의병을 조직할 수 없었다. 이처럼 노령한인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4월에 동의회가 발기 되어 5월 창립되는 등 거병의 기반이 갖추어져 갔다. 드디어 최재형을 중심으로 이범진이 이위종에게 보낸 1만 루불과 각지로부터 기부 받은 6천 루불, 최재형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