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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29집 25 이러한 정보 내용은 또 3월 27일 함경북도 경찰부장이 내부 경무국장에게 올린 보고서에도 그대로 전재되어 있다. 50) 위의 자료에 의거해 보면, 안중근 의사가 단지를 결행한 일자는 3월 2일이고, 그 장소는 연추이며, 안중근과 함께 단지를 결행했던 동지는 백규삼과 김기룡 등 2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의단지회를 결성할 때 ‘사역동혈(死亦同穴) 생역동 일(生亦同日)’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는 맹약문이 있었다고 한 점으로 미루어 동지 단지회의 취지문이 작성되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일제는 동의단지회가 결성되던 당시에 이미 밀정을 통해 그 사실을 포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지동맹 관련 정보는 몇 달 뒤 하얼빈의거 결행 직후에 안의사가 신문을 받고 공판을 진행하던 상황에서 여기에 대한 언급이 없던 점으 로 미루어 사장되어 거의 활용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위의 자료에서 안중 근을 비롯하여 백규삼과 김기룡 등 3명은 동의단지회의 맹원으로 명백하게 확인 된다고 할 수 있다. 안중근은 동의단지회에 대한 신문이 시작되던 초반에 회원들의 신변안전을 염 려하여 단독으로 단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1909년 11월 14일 구연(溝淵) 검찰관의 제2회 신문 때, 안의사는 단지 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 이 혼자 결행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문: 그대는 작년 동지 4명과 의논 후 노우키에프스크(연추-필자주)에서 이등( 伊藤 ) 공작을 살해할 것을 맹세하고 손가락을 절단한 일이 없었는가? 답: 그곳에 회합하여 한국의 독립을 도모할 협의를 하였으나 이등만을 살해할 의 논은 하지 않았다. 또 손가락은 그때 절단한 것이 아니고 나의 손가락은 금년 봄에 맹세할 때 절단하였다. (중략) 문: 그때 손가락을 절단한 동지는 누구 누구인가? 답: 나 혼자 결심하고 손가락을 절단하였다. 문: 그대와 같이 김기열(金基烈)․홍치범(洪致凡)․윤치종(尹致宗) 등이 손가락을 절단 한 것이 아닌가? 답: 그러한 일은 없다. 51) 50) 暴徒에 關한 編冊 , 「警秘收 제222호의 1」(1909. 3. 27);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 운동사-자료13 , 811쪽. 51)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6 , 5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