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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북벌정책과 나선정벌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재검토 228 군사연구 제129집 청나라 한거원이 서울에 들어와서 왕과 대신들이 便殿에서 접견할 때, 한거원이 자문(咨文 : 청과 외교적인 일이 있을 때에 주고받던 공식적인 외교문서)을 전달 하였는데, 자문의 내용은 조선에서 鳥槍 을 잘하는 사람 100명을 선발하여 회령부를 경유, 양방장(청나라의 장군)의 지휘를 받아 羅禪을 정벌하는데 3월 10일까지 영고 탑에 도착하라는 내용이었다. 38) 효종은 자문을 받은 다음날 청의 요구를 승인하였고, 비변사는 효종의 지침을 받아 병력파병과 관련하여 15개 항의 세부항목을 수립하였는데 중요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① 포수 100명을 함경북도에서 사격술이 뛰어나고 건장한 자를 선별하여 보내되 ... ② 군량은 영고탑에 당도한 뒤 청나라에서 지급할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영고탑에 당도할 때까지 10일분의 군량을 준비하여 수송한다. ③ 군병들이 선발되어 출병하면 그 가족들에 대해서 官에서 각별히 護恤하여 잡역을 면제해 주고, 경작할 힘이 없는 자에게는 그 이웃으로 하여금 도와주게 하여 失農의 폐단이 없게 한다. ④ 금번의 파병 시기는 자문에 의하여 3월 10일까지 영고탑에 도달해야 하므로 군사들은 2월 그믐 안으로 회령부에 모여 ... 3월 1일에 출발하면 10일까지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39)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조선은 함경북도병마우후인 邊岌을 營兵將(출병군사령 관)으로 임명하고 함경북도 관내에 있는 군사 중에서 베 15필을 지급한다는 조건 으로 군병을 모집하였다. 병력은 조총군 100명과 40) 수행원을 비롯한 50여 명의 인원을 합쳐 152명으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10일간의 식량을 휴대하여 출정하 였다. 조선군은 1654년 3월 26일 회령에서 출발, 연길을 경유하여 8일간의 행군 끝에 4월 3일 영고탑에 도착하여 청군과 연합군을 이루었다. 41) 38)『효종실록』권12, 5년 2월 계해.;羅禪이란 Russen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39)『비변사등록』집2, 효종 5년 2월 2일. 40)『효종실록』권12, 5년 3월 정사. 41) 나선정벌에서 조선은 청나라와 연합전선을 구축하였지만 독자적인 작전을 하지 못하고 청의 통제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