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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지역 민족운동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 120 군사연구 제129집 경향을 분석한 연구도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보도통제에 대해 살펴보는 한편, 매일신보 가 청산리대첩에 대해 선전효과를 노리는 듯한 추측성 기사를 반복적으로 개제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일 본군이 청산리전투를 통해 상당한 정도의 충격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 았다. 이밖에 1920년대의 독립군과 관련해서는 만주 현지에서 채록한 <신흥무관 학교 교가>와 항일투쟁시기 노래집 및 조선족민요곡집 등에 실려 있는 항일 투쟁 노래의 의미와 내용을 분석하고 이들 내용의 투쟁적 성격과 현재적 의미에 대해 분석을 시도한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10) 1930년대 국민부 산하의 무장대원들이 국내에 들어와 전개했던 군자금모집 활 동에 대한 연구도 발표되었다. 1932년 6월 변락규를 대장으로 하여 김광해, 김궁 민, 등이 국내로 들어와 전개한 군자금 모집활동과 1933년 6월 군자금 5만원 이 상의 획득과 당 연락기관의 설치를 위해 노력했던 서원준의 활동에 대해 정리했 던 연구가 발표되었으며, 11) 1932년 3월 30일 조선혁명군 대원 이선룡이 동일은행 장호원 지점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했던 상황과 그의 활동에 대한 국 내언론의 보도 경향 등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연구들은 모두 당 시의 언론에 나타난 상황을 중요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12) 이밖에 1930년대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세력의 만주지역 독립운동세력의 인식에 대해 분석한 연 구도 있었는데 김구와 김원봉 등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세력들이 만주지역의 독 립운동세력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연대를 맺으려고 했음을 밝히는 동시에, 이 들의 노력은 관내지역 독립운동세력이 독립운동 방략에서 항일무장투쟁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13) 사회주의진영의 동향에 관한 논문도 발표되었다. 1929년 이후 일국일당주의노 선(一國一黨主義路線)에 따라 전개된 한인공산주의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연이어 전개된 한인들의 항일무장투쟁 참여에 대해 ‘중국조선족’이라는 새로운 민족정체성의 10) 길태숙, 「재만조선인 항일투쟁 노래의 과거와 현재적 의미」, 동방학지 144,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8. 11) 황민호, 「1920년대 초 재만 독립군의 활동에 관한『매일신보』의 보도경향과 인식」,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0, 2007. 12) 박환, 「1930년대 조선혁명군의 국내 군자금 모금 활동 -李先龍의거를 중심으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2집, 2010. 13) 한상도,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세력의 동북지역 독립운동 인식」,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7,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