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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 동상 Paikbum Kim Koo’s statue 관리번호 10-1-11 건립자: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관리자: 남산공원관리사무소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100-115 김구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부친 김순영(金順永)과 모친 곽낙원(郭樂園)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9월 탐관오리의 척결과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외치며 동학군의 선봉장으로서 해주성(海州城)을 공략하였으며 1896년 3월에는 변복(變服)한 일본인 중위를 살해하여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광무황제(光武皇帝)의 특명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1907년에는 독립지사들의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맹렬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만세 시위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한인애국단 등을 조직하고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주석을 역임한 후 광복 이후에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하여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결의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1948년 4월 19일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오는 등 민족통일을 염원하던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선생의 유해는 온 국민의 애도 속에 7월 5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