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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font style="background-color:#ffffff;font-size:15px"> 영빈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영조가 말하기를, “선대 왕조(숙종)의 후궁은 다만 이 한 사람만 남았었다. 일찍이 인현성모(仁顯聖母 - 인현왕후)와 더불어 기사년의 환란을 만났었다가, 갑술년 성모께서 복위되었을 때에 그도 또한 복작(復爵)되었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 항상 어머니라고 일컬었는데, 지금 그 상을 당한 소식을 들으니 슬픈 감회를 억누르지 못하겠다. 예장(禮葬)은 안빈(安嬪 - 효종의 후궁 안빈 이씨)의 예에 따라 행하도록 하라.” <br> 여기서 '기사년의 환란'이란 숙종 15년(1689) 단행되었던 '기사환국'을 뜻한다. 기사환국은 서인과 남인 간의 정권교체를 말하는데, 이 속에는 서인의 지지를 받았던 인현왕후가 남인의 지지를 받았던 희빈 장씨에게 국모자리를 내 준 것도 포함된다. 영조는 서인(노론)세력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올랐기에, 이 기록에서도 서인들이 몰락했던 기사환국을 '환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또한 '갑술년 복위'는 숙종 20년(1694) 발생했던 '갑술환국'을 뜻하는데, 이 때에는 정반대로 남인세력이 축출되고 서인세력이 다시 집권하였으며, 중전이던 희빈 장씨가 도로 빈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가 복위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