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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font style="background-color:#ffffff;font-size:15px">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를 폐비시키고, 왕후에까지 올랐다가 5년 만에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고 사약을 받았다. 그후 1722년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되고, 동시에 대빈궁이 세워지면서 이곳에 신주가 봉안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지금의 낙원동에 해당하는 중부(中部) 경행방(慶幸坊)에 있었으나, 1870년(고종 7) 육상궁으로 옮겼다. 이어 1887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렸다가 1908년(순종 2) 다시 육상궁 안으로 옮겼다. 목조건물로, 건축 기법은 칠궁의 다른 건물과 비슷하지만, 기둥이 모두 두리기둥으로 되어 있어 좀더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