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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성리학자의 종조(宗祖)인 김종직(金宗直)이 이곳 현감으로 부임하여 어느 날 학사루에 올랐는데, 유자광(柳子光)의 시(詩)가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소인배의 글이 걸려 있을 수 없다"고 노하여 당장 떼내어 불사지르게 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유자광은 원한을 품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러던 중 김종직이 죽고, 그의 제자 김일손(金馹孫)의 사초(史草) 사건이 터졌다. 즉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그의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었는데, 그것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연산군을 충동하여 김일손 등 사림파 30여명을 사형시키거나 조정에서 쫓아냈다. 이 때 이미 죽은 '김 종직'의 시체를 관에서 꺼내어 참하는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하게 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단초가 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