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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軍事革新으로 본 戰爭史 96 군사연구 제127집 2) 동원체제 유지와 예비군 전력 확보 장기적인 군의 보급 및 국가 경제력 동원을 위해 국방성내에 동원국이라는 비밀특별국을 설치하여 경제담당 참모본부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리고 예비 군의 역할은 주로 경찰과 민간인 노동자들이 담당하였는데, 당시 경찰은 연합국 측에서 그 수를 제한하였지만 보안경찰, 지방경찰 등의 명칭으로 계속 존재하였 으며, 장교출신자에 의해 훈련되고 모든 군사훈련에도 참가하였다. 또한, 예비군은 공식적으로는 단기계약에 의해 고용된 민간인 노동자였지만 실제는 군으로부터 급여, 훈련, 명령을 받았으며, 명백하게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존재한 예비군 이었다. 따라서 독일은 나름대로의 국방성내 동원국을 설치하여 국가 동원능력을 구비하고 예비전력인 예비군을 확보함으로써 전쟁초기 어느 정도의 전쟁을 지속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6년간 독일군 병력은 10만명에서 370만 명으로 성장했고 전차와 항공기가 새롭게 확대된 군대의 최전선에 배치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시 전격전을 구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3) 전술교리와 무기체계 발전 1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들은 전승의 안도감에서 방어전 교리에만 집착하 고 있을 때 독일군 지도자들은 패전을 교훈삼아 공격전술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질적으로 우수하고 고도로 기동화된 소규모 단위의 정예부대를 육성하고자 하였 다. 특히,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군사이론가인 풀러나 리델하트, 드골 등에 의해 발전된 기계화 이론들을 구데리안 등에 의해 발전 및 완성시킴으로써 독일 고유 의 전술교리가 태동하게 되었고 이것은 곧 1921년 젝트가 “독일군 재건에 관한 기본사상”을 발표함으로써 기동을 위주로 한 공격의 우위와 더불어 전격전의 기 반을 다지게 했다. 또한, 수많은 항공기 조종사들은 민간 항공사에서 비행훈련을 받았고, 베를린 공과대학에 파견된 다수 장교들은 과학기술 적용 가능성을 연구 하였으며, 많은 참모장교들과 군사전문가들이 일본․중국․남미제국․발틱제국․ 소련 등지에서 현대장비를 다룰 수 있는 위탁훈련을 받음으로써 전술교리와 연계한 과학기술과 현대 무기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발전시켜온 전술교리와 무기체계가 결합되어 전차와 항공기들이 주요한 공격지점에 집중할 수 있는 유연성과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무선통신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것은 곧 전차를 집중운용하여 충격력과 속도발휘를 가능하게 하였고, 숙달된 항공조종훈련을 바탕으로 한 항공지원하 기갑부대를 성공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