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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쟁 사 군사연구 제127집 95 함락시기에 독일의 동맹국으로서 참전한 이탈리아는 사부아의 일부분을 확보하였 으며, 코르시카 섬을 포함한 점령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다. 독일의 군사혁신 1) 군대의 정예화와 참모본부 제도 존속 제한된 수의 국가방위군을 “이중의 목적을 가진 간부화된 정예군”으로 만 들기 위해 모든 병사는 부사관의 역할을, 부사관은 초급장교의 역할을 담당하고, 모든 장교는 대부대의 지휘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고급 지휘관이 될 수 있도록 엘리트 군대를 육성하고자 하였다. 장교로 임관하기 위해서는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과 4년 6개월의 훈련과정을 거쳐야 했고, 특히 귀족과 구군벌 가문 자제들의 다수를 장교로 임관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출신성분과 학력의 요소는 병사 선발 에도 중요하게 적용되어 징집제도가 지원병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나라의 군대보다도 우수하게 육성될 수 있었다. 이렇게 우수하게 육성된 부대 지휘관들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 전역에서 독일군의 “임무형 지 휘”가 효율적으로 활용되어 작전실시간 변화되는 환경에 쉽게 대처해 나갈 수 있 었다. 반면, 프랑스 군대는 중앙화된 지휘체계에 의존했기 때문에, 사전 수립된 계획에서 벗어나서 탄력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없었고 이것은 곧 작전실시간 많은 호기들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설치를 금지당한 참모본부의 전통과 기능을 정부 각 부처에 이관시킴으로써 임무를 지속시켰다. 아울러 새로운 참모요원 양성을 위해 우수한 사람을 후보자로 선발하여 7개의 군관구에 설치된 군사학교에서 2년 간 훈련을 받게 하고 그 중에서 가장 유능한 장교들을 다시 선발하여 베를린에 있는 국방성으로 전입시켜 참모본부 요원으로서의 경험을 축적하게 하였다. 또한, 1차 세계대전의 교훈10)이 무엇인지 참모들에게 광범위한 연구를 하도록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사전 치밀한 준비와 실행력을 바탕으로 패배자로서 승자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반성하고 도약의 기회로 삼은 결과 초기 프랑스 전역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 James S, Corum,「젝트장군의 군사개혁」(육군대학, 1998) 17~42쪽, “전략적․전술적․ 과학기술적인 측면을 크게 구분하여 교훈을 도출하였고, 이러한 교훈은 독일 육군에게 공격과 방어시 기동전술과 융통성면에서 우월했다는 신념을 강화시켜 주었으며 독일 육군의 훈련, 편성, 전술적 사고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